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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눈물의 시인 박용래(朴龍來) (1925~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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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의 시인이여. 당신과 더불어 산천을 떠난 그 눈물들, 오늘은 어느 구름에 서리어 서로 만나자 하는가. ……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닌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이문구, 박용래 약전(略傳)-

  

그는 여성적이고 감상적이었다. 그의 몸짓, 말투부터가 너무나 시인다웠고, 시에 관한 한 촌보도 양보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자존심이 있었다, 나는 그의 영롱한 감성과 서정의 아름다움에 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술을 좋아해서 만나면 으레 술잔을 나누었던 그는 한 줄의 시를 위해 몇십 번씩 생각하며 시어를 다듬을 만큼 꼼꼼하고 생각이 깊었다.

-호현찬 언론인·영화인,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다운 인생-

 

 

돈 세는 일이 역겨워 은행을 그만두시고, 등록금을 독촉하기가 안스러워 결국 교직을 떠나셨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느 곳에나 얽매이기를 싫어하셨던 자유분방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여린 심정으로, 어쩌면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으로 운명지워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연 서양화가, 박용래시인의 딸, 아버지는 오십 먹은 소년-

 

 

 

술 먹은 박용래가

대전 유성온천 냇둑

술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은이 자네는

저 냇물이 다 술이기 바라지? 공연스레 호방하지?

나는 안 그려

나는 저 냇물이 그냥 냇물이기를 바라고

술이 그냥 술이기를 바라네

 

고은이 킬킬 웃어대며

냇물에 돌 한 개를 던졌다

물은 말 없고

그 대신 냇둑의 새가

화를 내며 날아갔다

박용래가 울었다 안주 없이 먹은 술을 토했다

괜히 새를 쫓았다고 화를 냈다

 

은이는 나뻐

은이는 나뻐

 

박용래가 울었다 고은은 앞서가며 울지 않았다.

-고은, 어느날 박용래-

 

 

박용래

 

소나기 속에 매미가 우네.

 

황산나루에서 빠져 죽고 싶은 사람

막걸리잔 들고 웃다 우는 사람

상치꽃 쑥갓꽃 하며 호호거리는 사람

맷돌 가는 소리에 또 우는 사람

 

싸락눈 속에 매미가 우네.

 

-홍희표, 박용래- 

 

 

박용래

박용래는 훗승에서 개구리가 되었을라

상칫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아욱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죽은 홍래 누이 그립다가 그리고…… 그리고……

박용래는 훗승에서 그리고로 울었을라

 

서정춘 시집 (시와시학사)에 실린 박용래

 

       

술은 마음의 울타리

술 속에 작은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가 보면

조약돌이 드러난 개울

개울 건너 골담초 수풀

골담초 수풀 속에 푸슥푸슥

날으는 동박새

스치는 까까머리 아기 스님 먹물 옷깃

누가 마음의 울타리를 흔드는가

누가 마음의 설렁줄을 당기는가.

 

江景

 

안개비 뿌옇게 흐려진 창가에 붙어서서

종일 두고 손가락 끝으로 쓰는 이름

진한 잉크빛 번진 서양 제비꽃, 팬지

입술이 갈라진, 가슴이 너울대는.

 

오류동

방안에 들였어도 퍼렇게 얼어죽은 삼동의 협죽도

쇠죽가마 왕겨불로 달군 방바닥은 등을 지져도

외풍이 세어서 휘는 촛불꼬리

들리지도 않는 부뚜막의 겨울 귀뚜라미 소리

찔찔찔찔 들린다 해서 잠들지 못하는

초로의 시인

윗목에 얼어죽은 제주도 협죽도가

함께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대전시 교외 오류동

삼동의 삼경. 귀를 세우고

 

 

-나태주, <박용래>-

 

 

맑은 이슬방울이 연잎에서 또르르 굴러 떨어졌는데, 그것은 늙지 않을 것 같다. 박용래는 내 안에서 늙지 않은 채로 항상 이슬처럼 있다. 박용래는 그 타고난 자리를 잃지 않고 그 천분의 자리를 지켜낸 사람 같다.

박용래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꿈의 세계에 있는 듯도 싶다. 박용래라는 사람은 타고 날 때 묻어 있었던, 타고나기 이전의 어떤 것을 아직 지닌 채 살았던 사람같다. 세상 파도가 아무리 거셌어도 박용래에게서 그것을 앗아가지 못했다. 그것이 시가 되고 그는 이 세상에서 오직 시인으로만 살다가 갔다.

-최종태 조각가, 맑은 이슬방울처럼 그렇게 : 박용래를 회상함- 

 

 

‘아내와 아이들 다 職場에 나가는
밝은 낮은 홀로 남아 詩 쓰며 빈집 지키고
해어스름 겨우 풀려 친구 만나러 나온다는
朴龍來더러 ‘장 속의 새로다’하니,
그렇기사 하기는 하지만서두 지혜는 있는 새라고 한다.
요렇처럼 어렵사리 만나러도 나왔으니,

 

지혜는 있는 새지 뭣이냐 한다.
왜 아니리요.
그중 지혜있는 장 속의 詩의 새는
아무래도 우리 朴龍來인가 하노라.’        

 

                                                      -서정주 ‘박용래’ 전문
문학사상 1976년 1월호에 게재

 

 

 아버지를 회상하며

 
가을. 감나무 이파리. 감새의 수리성.

오래 전 일입니다. 방에서 큰 울음소리가 들리고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조심히 문을 열고 쳐다본 아버지의 모습.

아…….

전 시인을, 우수수 떨어진 청시사의 저녁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구름의 행방을 묻지 말자. 구름은 영원한 방랑자.’

두 줄의 시구를 읊고, 육 개월 후 구름이 되어 가셨습니다.                

                                                                         - 박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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